6월 14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울트라 마라톤인 커메이즈 마라톤에 참가하기 위해 2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더반 시청 밖에 모였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이 거대한 행사는 주자들이 엄격한 12시간 제한 시간 내에 가혹한 코스를 완주하려 노력한다는 점에서 신체적 인내력을 시험하는 중요한 무대다. 피터마리츠버그와 더반을 잇는 이 경주는 단순한 스포츠 경기를 넘어 국가적 통합의 상징이자 역사적인 사회적 격차를 해소하는 수단이 되었다.
커메이즈 마라톤의 역사는 1921년에 시작되었다. 첫 경주 당시 34명의 주자가 경합을 벌였다. 당시 이 행사는 백인 남성으로만 참가가 제한되어 있었다. 초기 코스는 약 88km(54.6마일)로, 피터마리츠버그에서 더반 방향으로 내리막길이었다. 창설 이래 이 경주는 매년 방향을 바꾸며 스포츠계에서 꾸준한 존재감을 유지해 왔다. 긴 역사 속에서 이 행사가 중단된 적은 제2차 세계대전과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단 두 차례뿐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경주도 함께 변했다. 수년 동안 이 행사는 국가의 인종 불평등을 반영했다. 그러나 경주는 결국 인종 차별이 철폐되었고 1975년에 여성에게도 개방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마라톤 유산의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공식적인 인종 차별 철폐 이전에도 특정 개인들은 시대의 장벽을 깨뜨렸다. 예를 들어, 프랜시스 헤이워드는 1923년에 커메이즈를 시작하고 완주한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 이후 1935년에는 로버트 므샬리가 경주를 완주한 최초의 흑인 남성이 되었다. 이러한 진보는 수십 년간 계속되어 1989년 샘 츠발랄라가 커메이즈에서 우승한 최초의 흑인 남성이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마라톤의 진화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역사의 광범위한 변화를 보여주는 거울 역할을 한다. 수십 년 동안 이 경주는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었으나, 점진적인 장벽의 붕괴는 현대의 포용적인 시대로 가는 길을 열었다. 전문가들은 소수의 백인 남성으로 제한되었던 경주가 거대하고 다양한 모임으로 변모한 것이 국가의 변화하는 사회적 지형을 반영하는 느린 과정이었다고 지적한다. 최초의 여성 완주자부터 최초의 흑인 우승자에 이르기까지 각 이정표는 스포츠계 내에서 커지는 평등 의식에 기여했다. 이러한 발전은 이 행사를 배제의 상징에서 진보를 위한 플랫폼으로 변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
오늘날 이 마라톤은 사회 통합을 위한 강력한 도구로 작용한다. 극심한 인종 불평등을 겪었던 국가에서 2만 명의 다양한 주자들이 함께 경쟁하는 모습은 오래된 분열을 녹이는 데 도움을 준다. 주자들이 출발을 기다리는 동안 분위기는 기대감으로 가득 찬다. 국가(國歌)와 더불어, 원래 남아프리카 금광에서 일하던 짐바브웨 이주 노동자들이 불렀던 '쇼숄로자(Shosholoza)' 노래가 선수들과 함께 울려 퍼지곤 한다. 참가자들 사이의 이러한 동료애는 이 경주가 어떻게 독점적인 행사에서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모이는 거대한 집회로 진화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행사의 정서적 무게는 주로 이른 새벽 시간대에 느껴진다. 가디언(The Guardian)의 보도에 따르면, 수천 명의 참가자가 어둠 속에서 모여들 때 분위기는 기대감으로 고조된다. 쇼숄로자 합창과 같은 경주 관련 음악 전통은 이 지역의 노동 및 이주 역사와 깊은 연결 고리를 제공한다. 이러한 문화적 요소들은 국가와 결합하여, 경주의 공동된 고통이 수천 명의 참가자 사이에서 공통된 정체성을 형성하는 독특한 환경을 조성한다.
사회적, 역사적 영향 외에도 마라톤은 개인적인 회복의 길을 제공한다. 많은 선수에게 이 강도 높은 신체적 도전은 정신 건강 문제를 관리하는 방법이 된다. 윌리엄 셀레카(William Seleka)가 바로 그런 사례다. 우울증을 다스리기 위해 2025년 3월 달리기를 시작한 셀레카는 50km 울트라 마라톤을 성공적으로 완주했다. 그의 여정은 이러한 극한의 신체적 인내에 필요한 절제력이 어떻게 개인이 고난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많은 이들에게 이 경주는 단순히 신체적 강인함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삶의 어려움에 맞설 정신적 회복탄력성을 찾는 과정이다.
경주의 운영 측면은 모든 참가자에게 여전히 도전 과제로 남아 있다. 경주가 더반을 향해 내리막으로 진행되든, 피터마리츠버그를 향해 오르막으로 진행되든, 그 거리는 엄청난 준비를 요구한다. 12시간의 제한 시간은 주자들이 결승선에 도달하기 위해 신체의 한계까지 몰아붙여야 하므로 지속적인 압박으로 작용한다. 6월 14일, 2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엄격한 제한 시간이 끝나기 전에 피터마리츠버그에 도착하기를 바라며 더반 시청 밖에 모였다. 수만 명의 관중과 참가자가 참여하는 이 행사의 거대한 규모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문화의 초석이 된다.
코스의 신체적 요구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경주 방향이 매년 바뀌기 때문에 주자들은 내리막 또는 오르막 도전에 대비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매년 경주가 똑같을 수 없게 만들며, 선수들이 해당 경로의 특정한 요구에 맞춰 훈련을 조정하도록 요구한다. 12시간 제한 시간의 지속적인 압박은 주자들이 허용된 시간 내에 거리를 완주하기 위해 피로 및 자연 환경과 싸워야 하므로 매 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세기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커메이즈 마라톤은 34명의 남성이라는 작은 집단에서 세계적인 현상으로 변모했다. 이 경주는 엄격한 인종 차별 시대를 지나 현대의 포용적인 시대로 나아갔다. 다양한 인종과 성별이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함으로써, 이 경주는 인내와 통합의 유산을 계속해서 쌓아가고 있다. 주자들에게는 체력의 시험이며, 국가에게는 1921년 이후 사회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를 상기시켜 주는 계기다.
💡 알아두면 좋은 배경 지식
- The Comrades is the world's oldest and largest ultramarathon [S1]
- The first race in 1921 took runners 54.6 miles (88km) from Pietermaritzburg downhill to Durban [S1]
- The race changes direction every year, pausing only for the second world war and the Covid-19 pandemic [S1]
- In its first year, 34 runners, all white men, lined up for the race [S1]
- More than 20,000 people stood outside Durban city hall on 14 June, hoping to make it to Pietermaritzburg before the 12-hour cutoff [S1]
- The race was desegregated and opened to women in 1975 [S1]
- Frances Hayward became the first woman to start and finish the Comrades in 1923 [S1]
- Robert Mtshali was the first black man to complete the race in 1935 [S1]
- Sam Tshabalala was the first black man to win Comrades in 1989 [S1]
- William Seleka, who started running in March 2025 to deal with depression, finished a 50km ultramarathon [S1]
- === ALLOWED MEDIA OUTLETS (Writer may cite ONLY these) ===
- www.theguardian.com
- www.aljazeera.com